영화 <일일시호일>의 원작자인 모리시타 노리코의 에세이 <계절에 따라 산다> 를 읽었다. 1년 24절기동안 매주 한 번씩 다도를 배우러 다니는 일상을 담담하면서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책이다. 저자인 노리코는 어머니의 권유로 스무살 때 우연히 다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다도는 지치고 힘든 날에 큰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이 에세이를 출간하게 된 것 같다.
무언을 주고 받다.
맑음.기온도 높다. 드디어 본격적인 봄이다. 오후에 다도 수업에 갔다.쓰쿠바이의 물소리가 완전히 둥글어져 있었다.히사쿠로 물을 뜨다가 정원 구석에 살그머니 피어 있는 제비꽃을 발견하고, 무심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다도실에 들어가 족자를 바라봤다. /흐르는 맑은 물은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늘 움직이는 것은 정체되지 않아 맑다고 한다.(중략) 솔바람소리속에서, 그런 무언가가 오가며 방 안의 공기가 한곳으로 집중되거나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향하거나 두둥실 퍼져 나가며 온화해지는 것을 느낀다.
柳綠花紅 유록화홍/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다도실에 걸려 있는 족자에 걸린 문구다. 다도수업에서 족자를 걸어 두는데 거기엔 항상 절기에 맞춰 좋은 글귀를 적어 둔다. '유록화홍' 버들은 꽃이 될 수 없고, 꽃도 버들이 될 수 없다.꽃은 어디까지나 붉게 피어나면 되는 거고, 버들은 어디까지나 푸르게 우거지면 되는 거다.
책에 실린 다식이나 다완 일러스트도 작가가 직접 그렸다. 아래 일러스트는 새해 첫 다회에서 먹는 '도키와만주'라는 과자다.하얀 겉면과 녹색으로 물들인 팥소는 눈 덮인 소나무를 표현한 거라고 한다. 먹기에 너무 예쁜 다식이 많이 나오는데 이렇게 의미까지 곁들이니 너무 재밌다.
모리시타 노리코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거기에 맞춰 살아나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을 40년간 다니는 다실에서의 데마에를 통해 따뜻하게 격려하고 있다. 겨울철 화로처럼 곁에 두고 틈 날 때마다 읽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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