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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뉴욕 스토리>

로버스 2023. 5. 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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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임영균의 사진 산문집 <뉴욕 스토리>를  읽었다.  유학을 요즘처럼 쉽게 갈 수 없던 시절, 1970년대는 외화 반출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일반인의 해외여행도 엄격하게 규제하던 시대에 저자는 뉴욕으로 스승이 써 준 '인내'와  '성실' 이라는 붓글씨를 품에 안고 유학길에 오른다.  처음 계약한 브로드웨이에 있는 독신자용 아파트는 공동 화장실에선 마리화나에 취한 입주자와 마주치고,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아파트 숙소로 올라 가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비릿한 피냄새에 선혈이 낭자한 걸 목격하기도 하고, 잠시 나간 사이 소중한 카메라와 현금을 도둑맞기도 하는등 위험한 곳이지만 거기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Seoul> 1980

 

 

미국에서 유명한 다큐 사진가였던 유진 리차드의 강의에서 서로의 누드 사진을 찍어 오라는 과제에 당혹하기도 하지만 아무 거리낌없이 서로 짝을 짓고 약속장소를 정하는 서양 학생들의 모습에서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다. 그 다음 주 강의실 벽에 붙은 열다섯명 수강생 모두의 작품을 보며 차례로 촬영 의도와 과정을 설명하고 그 결과를 놓고 토론하면서 모두에게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 것을 깨닫는다. 

 

 

<소호 Soho> 1983

 

 

뉴욕 국제 사진센터에서 공부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중앙일보 뉴욕지사에 입사하게 된다.  국내외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쓰게 되면서 첫번째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만난다. 거리에서 주운, 고장 난 텔레비전이 한쪽에 수북이 쌓인 뉴욕의 백남준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그의 작업과 일상을 본격적으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당시 촬영한 '브라운관을 뒤집어쓴 백남준'은 반응이 좋아 1984년 뉴욕타임스(NYT) 신년 특집호 섹션 표지를 장식하였다. 1982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난 이후, 그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함께하며 20년간 예술가로서의 동반을 이어가는데, 백남준은 임영균의 작업에 대해 “예술사진이란, 사진이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다. 지금 컴퓨터를 이용한 인공사진이 차차 발달하고 있다. 사진술은 더욱 철저해져서 진리가 숫제 안보이게 된다. 역설이다."  라고 말하였다.

 

 

<소호 백남준 스튜디오 Nam June Park> 1983

 

 

1990년대 이스트빌리지에는 항상 홈리스들로 넘쳐 났다. 경제 불황으로 뉴욕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 중 뉴욕생활이 너무 좋아 친구집을 전전하다 홈리스로 살아가기도 한다. 이들 중 지식인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맨해튼 맥도날드 McDonald's> 1984

 

 

 

1897년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에 의해 뉴욕으로 온 다섯명의 에스키모인들은 백인 풍토병으로 가장 나이 어린 소년 '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자연사박물관의 인류학부 관리인들이 에스키모 표본 연구를 위해 이들을 데려오게 하였는데 살아 있는 표본이 되어 관람객들의 구경거리로 살아가다 죽음을 맞는다. 박물관측은 아들 미닉앞에서 거짓 장례를 치루고 죽은 에스키모인들의 유해를 박물관에 전시하였다. 그 후 미국땅에서 살던 미닉은 장례까지 치른 아버지의 유골이 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걸 알게 되고  아버지의 유골을 돌려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고 미닉은  27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교사출신 작가 '켄 하퍼'는 퇴직 후 1977년 그린란드 카나크에서 미닉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10여년간의 조사끝에 1986년  <내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주오>를 출간한다.  이후 미닉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1993년 에스키모 4명의 유해는 그린란드 묘지에 묻히게 된다. 아래 저자가 찍은 자연사박물관이 미닉의 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을 내세운 인간의 행동이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자연사박물관 Museum of Natural History> 1999

 

 

 어느 한가한 오후 휘트니 미술관 관람을 하고 ,아파트로 향해 매디슨가를 걷고 있는 도중 그를 바로 큰 길의 정면에서 마주친 것이다. 유명인사인 그는 예상과는 달리 혼자였고, 검정 카우보이 부츠에 청바지(낡은 청바지가 아니고 색이 바래지 않은 진한 잉크빛의 새 청바지)와 터틀넥에 곤색 스포츠 재킷 차림으로 한가히 내 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인식한 것은 50미터 전방부터였다. 텅 빈 한가한 거리에서 그와 나 둘만 마주보고 걷고 있었기에 내가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무례하게 생각되어, 아쉽지만 그냥 지나쳤다. 

아래 사진은 저자가 도로에서 마주친 그 유명인사,앤디 워홀의  친구 바스키아의 입술을 소재로 한 <Black Lip>이라는 작품에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진심으로 피사체를 대하는 저자의 흑백사진에 또 진솔한 글이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이스트빌리지 Black Lip>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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