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 >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을 봤다. 1991년도에 만든 작품으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27살 타에코가 여름휴가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초등학교 아이와 웃고 있는 여성이 그려진 영화 포스터는 타에코의 어린 시절 모습과 현재이다. 타에코가 휴가차 떠난 농촌에서 타에코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계속 소환되면서 타에코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 본다.
어렸을 때 공중파 TV에서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하이디를 포함하여 인물이나 배경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제작한 줄 알았다. 당시 기독교 신자였던 즈이요 엔터프라이즈 사장이 감동을 받은 작품으로 선택한 책 '알프스 소녀 하이디' 는 기독교 색채가 짙은데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맡으면서 종교적인 색채는 최대한 배제하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제작전에 일본 최초로 작품무대가 되는 스위스,독일로 해외 로케이션까지 하는등 아무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 못 할 정도로 배경이나 일상생활 묘사가 뛰어났다. 타카하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을 표현하는데 무척 뛰어난데 <추억은 방울방울> 도 실제보다 더 디테일하게 복잡한 감정을 잘 표현한 장면이 많아 2시간 정도 되는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타카하타는 작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우를 정하고, 그 캐릭터의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목소리 연기를 미리 녹음하고, 녹음을 하는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를 그림을 그릴 때 참고하는데, 이 작품에서 어른 타카오의 얼굴에 웃을 때마다 생기는 팔자 주름같은 선이 실제 이 역할을 연기한 성우의 표정에서 따왔다고 한다. 보통 젊은 캐릭터에겐 잘 쓰지 않는 선이여서 처음엔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면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싱글인 타에코는 상사에게 열흘간 야마가타로 휴가를 간다고 말한다. 영화 초반부터 과거 5학년때인 타에코도 번갈아 가며 나와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본 나는 약간 헷갈렸다.
5학년 타에코는 응석받이 셋째 딸로 아빠가 무척 귀여워한다. 아버지는 가족들과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이 묵묵히 신문을 보다가 밥을 먹곤 하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결정권자다. 타에코는 둘째 언니의 에나멜 핸드백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언니는 주지 않는등 항상 둘째 언니와 티격태격한다.
아버지는 제일 예뻐하는 타에코가 먹고 싶어하는 파인애플을 퇴근길에 사왔는데, 아무도 어떻게 먹는 줄 몰라 선반위에 올려 놓고 있다가 첫째 언니가 방법을 알고 와서 파인애플을 자르자 온 가족이 신기한 듯 쳐다 보고 있다. 파인애플 맛이 예상보다 별로여셔 모두 맛없다는 말을 하지만 타에코는 꾹 참고 언니들이 남긴 것 까지 먹는다. 60년대에는 수입 열대 과일이 요즘처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였다. 바나나도 비싼 편이였는데 막내딸이 먹고 싶다고 하니 퇴근길에 사 온 과묵한 아버지의 사랑을 엿 볼 수 있는 따뜻한 장면이다.
휴가로 간 야마가타현에서 타에코는 기차역에 마중 나온 농촌 청년 토시오를 만난다. 타에코는 집에 들러 짐도 풀지 않고 곧장 홍화따는 일을 하는 곳에 간다. 이른 새벽부터 홍화 따는 일을 돕는데 홍화를 가공하여 염색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잘 표현하여 다카하타 감독의 리얼리티가 부각되는 장면이였다.
5학년때 타에코를 좋아하는 다른 반 아이가 골목에서 서로 수줍게 대화하는 모습이다. 비 오는 날과/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너는 어떤 날을 제일 좋아하니? 뜬금없이 남자아이가 묻는다. 타에코가 흐린 날이라고 답하자 남자아이도 나랑 똑같네 하며 너무 좋아한다. 타에코의 마음을 하늘로 붕 떠 날아 가는 장면으로 표현하였는데 어릴 때 풋사랑을 참으로 예쁘게 그린 것 같다.
휴가 기간동안 토시오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타에코는 자신의 감정을 아직 잘 모른다.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숙박하고 있는 집의 할머니가 타에코에게 담담하게 하는 말에 타에코는 집을 뛰쳐 나가는데...
영화를 본 뒤 어린 시절 추억이 방울방울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